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금치 전투 (문단 편집) == 여담 == [[파일:우금치.jpg]] 실제 우금치 사진. 우금티 전투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투 당시의 근대 국어는 현대 국어와 많은 부분에서 차이점이 있어 [[구개음화]]가 널리 사용되지 못하였는데[* 문경새재의 '산불'''됴'''심' 표지판도 같은 맥락 ] 이 때문에 동학농민운동 당시에는 우금티로 불렸다가 현대 들어 구개음화가 정착되면서 구개음화를 적용해 우금치라고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드라마 [[녹두꽃]]에서는 당시 발음을 반영하여 '우금티'로 표기하였다. 현재에도 우금치에 있는 터널 이름은 우금티터널이다. 1991년 영화 [[개벽(영화)|개벽]]에서 영상화 되었는데 압도적인 일본군의 화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결국 패배한다. 1994년에 KBS1에서 방송된 동학동민운동 100주념 기념 다큐멘터리 극장에서 이 전투가 등장한다. 나중에 이 장면은 후일 KBS2에서 2002년에 방영한 명성황후 102회에서 동학농민운동 장면이 나올때 이때 나온 전투씬과 함께 재편집되어 방영됐다. 2년뒤인 1996년에는 KBS1 TV에서 방송된 신봉승 원작의 대하드라마 찬란한 여명 97회에서 방송되었는데 고증오류가 많은것으로 추정되는 장면이 많이 보여졌다. 또한 이 장면의 일부를 자사의 프로그램인 역사스페셜에서 쓰기도 하였다. 2019년 7월 5일 방영된 [[녹두꽃]] 21회 (2회연속 편성으로는 41회~42회에 해당)에서 오래간만에 재연되었다. 극적 허용인지 고증 오류인지 관군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축소시키고 일본군이 야포와 개틀링건을 운용하는 등의[* 사실 대부분의 역사해석에서 구한말의 혼란에서 빚어진 한국인(조선인) VS 한국인(조선인)의 구도를 대부분 두루뭉술 넘어가려는 경향이 강하다. 묘사해도 적당한 정치공작 선에서 넘어가고 유혈사태에 대해서는 잘 짚지 않는 편. [[갑신정변]], [[을미사변]] 역시 조선인 가담자([[조선군 훈련대]])들이 있었으나 이들에 대해서는 생략하거나, 그냥 시점의 무게를 일본 등의 외세에 행위에 무게를 둔다. '우리 민족끼리는 어려운 상황에도 똘똘 뭉쳐서 외세와 저항했다.'라는 민족주의적 시야가 녹아있는 역사해석에 저런 구한말의 조선인들 간의 갈등은 크게 방향성이 맞지 않기 때문.] 역사왜곡이라 할 만한 모습으로 나왔다.[* 사실 교과서나 공무원 시험/한국사 검정능력 시험도 일본군을 부각시키니(중화기나 근대 무기 무장 등의 서술은 덤) 딱히 다를 바가 없지만.]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동학 농민 운동, version=102)] [[분류:1894년 전투]][[분류:동학 농민 혁명]][[분류:조일관계]][[분류:한국사/전투]][[분류:공주시의 사건사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